레저경영연구소 최석호 칼럼

부자들은 뭐하고 노나?

여러 가지 측면에서 한국과 미국은 많이 다릅니다. 한국부자와 미국부자는 어떻게 다를까요? 2008년 연말 결산기업을 분석해보면 매출액 1조원이 넘는 우리나라 기업은 147개입니다. 이중에서 순수한 의미의 독자 창업한 기업은 웅진(웅진코웨이)와 네이버(NHN) 두 개 뿐입니다. 반면에 미국 100대 부자 중에서 무려 71명이 창업부자입니다. 포브스(Forbes)가 2009년 3월 발표한 ‘세계의 억만장자들’ 중에서 미국부자를 분석한 결과입니다. 미국부자는 창업부자고 한국부자는 상속부자인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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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부자 대 미국부자

뱁슨칼리지가 주관하고 있는 ‘국제 기업가정신 조사’ 결과를 보면, 창업 준비 또는 초기 단계에 있는 사람의 비율이 미국은 10.8%로 전세계 1위고 한국은 10%로 아이슬란드(10.1%)에 이어서 전세계 3위를 차지했습니다. 기업을 창업하고자 하는 사람은 한국과 미국 모두 많지만, 비즈니스를 통해서 부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미국은 아주 높고 한국은 아주 낮지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미국에서 부자가 된 사람들은 마이크로소프트, 버크셔 헤더웨이, 오라클, 구글 등 주로 창의산업 분야에서 나왔습니다(20대 부자 중에서 12명). 한국에서 창업하고자 하는 사람은 생계형 서비스업 분야가 대부분입니다. 매년 신설되는 법인의 약 60% 정도가 자본금 5,000만원 미만의 영세기업이라는 점에서도 사정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대기업의 하청에 초점을 맞춘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보수적인 기업금융만을 탓할 일은 아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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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창업부자 워렌 버펫(왼쪽)과 빌 게이츠(오른쪽)

미국 창업부자의 여가

15년 동안 세계 최고부자 자리를 내 놓지 않고 있는 빌 게이츠는 주당 약 100시간 정도 일을 합니다. 보통사람들의 약 두 배 가까운 장시간 동안 일할 수 있는 것은 금전적인 보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친구들과의 경쟁에서는 이기기 위해서 일하기 때문입니다. 즉, 놀이의 확장된 형태이기 때문에 장시간 노동이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일하지 않는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한 주에 한 편 정도의 영화를 보고, 인터넷으로 브릿지나 포커를 친답니다.

제2위 부자이면서 창업부자인 워렌 버펫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빌 게이츠와 유사합니다. 버펫의 즐거움은 투자중개업에서 다른 경쟁자들을 이기는 것이랍니다. 역시 창업부자에게 일은 확장된 놀이입니다. 부자들의 전통적인 라이프스타일을 따르지도 않고 과시적 소비를 하지도 않습니다. 개인제트기가 있기는 하지만 공항의 혼잡을 피하기 위한 것일 뿐 여가용으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버펫의 전기 작가에 따르면 2주간의 여름휴가동안 단 세 번 외출했는데 두 번은 영화를 보았고 한 번은 외식을 했다고 합니다. 게이츠처럼 브릿지를 좋아한다고 하는데, 게이츠가 재미있으니까 해 보라고 권유한 것이랍니다. 비즈니스에서 필수적인 모험심과 도박성은 버펫이 여가를 통해 추구하는 즐거움이기도 합니다.

현대식당 對 삼성식당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현대식당과 삼성식당 이야기는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현대와 삼성이 각각 식음료사업에 진출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지를 비교해서 꾸며낸 이야기입니다. 현대식당은 활력과 투지로 가득 찬 의지의 한국식당을 만듭니다. 그러나 웬지 투박하고 글로벌 기업다운 세련됨은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뭐라고 딱히 말할 수는 없지만 2% 부족합니다.

반면에 삼성은 대단히 치밀하고 세련되게 사업을 추진해 나가고 트렌드 세터 수준으로 매장을 꾸밉니다. 누가 봐도 역시 삼성이 하면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완벽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직접 먹어보면 현대식당 음식이 더 맛있습니다.이렇게 서로 대조되는 두 기업의 여가문화는 어떨까요?

한국 상속부자의 여가

CEO는 기업의 비즈니스를 이끌어가는 사령탑이기도 하지만 여가문화를 선도하는 창의경영인이기도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삼성과 현대의 기업문화와 여가문화는 이건희 회장과 정몽구 회장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고 있습니다. 결국 상속부자의 여가를 알면 두 기업의 여가문화도 알 수 있다는 말이지요.

만석군의 아들로 태어나 일본 유학까지 갔다 온 이병철의 아들, 이건희는 최고의 교육환경과 여가환경 속에서 성장합니다. 반면에 정몽구는 가난 속에서 정규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던 창업부자 정주영의 아들로서 근검절약하면서 어렵사리 창업하여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시킨 그 모든 것을 보고 자랍니다.

두 사람의 성장배경이 다른 만큼 기업의 여가문화도 다릅니다. 선친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골프를 접했던 이건희는 골프예찬론자로 성장합니다. 골프장을 임대해서 과장급 이상 직원들에게 골프교육을 시킬 정도라고 하니 두 말 할 나위가 없겠지요. 정몽구는 등산이나 테니스를 좋아합니다. IMF 경제위기 때에는 전직원들에게 골프를 삼가게 하고 등산을 권유했다고 하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여가도 참 소박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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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상속부자 이건희 회장(왼쪽)과 정몽구 회장(오른쪽)

여가 계급

지금으로부터 약 120년 전 톨스타인 베블렌(Thorstein Veblen)이라는 경제학자는 여가계급론(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을 주장합니다. 자본주의가 형성되던 초기 자유자본주의 시기에 부자들을 비판한 것입니다. 부자들은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한가함을 과시하고 과시적 소비로 부를 자랑하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어서 여가계급이라고 이름 지은 것이지요. 과연 오늘날에도 부자들은 노동윤리를 수용하지 않고 일을 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것을 좋아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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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계급론 영어판 책 표지와 저자 톨스타인 베블렌

짝퉁이라도 사서 들고 다녀야만 할 정도로 예나 지금이나 돈으로 자신과 타인을 구분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미국의 창업부자와 한국의 상속부자들이 어떻게 놀고 있는지를 살펴 본 결과, 오늘날의 부자를 여가계급으로 규정하기 힘듭니다. 한국과 미국의 부자들에게 일은 놀이적 속성을 지니고 있어서 장시간 노동을 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납니다. 한가함을 증명하고자 했던 여가계급과는 다르지요. 상속부자와 창업부자들에게 여가는 대단히 경쟁적인 비즈니스와 유사하고, 이러한 여가경험은 성공의 터전이 되고 있습니다.부자들을 달리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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